칼럼[문화일보] 계엄·연쇄탄핵은 헌법적 위기… 검사정치·운동권정치가 민주주의 망쳐 I Deep Read

관리자
20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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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민의 Deep Read - 헌법적 위기의 본질과 해법

비상계엄 이은 잇단 탄핵으로 민주주의 시험대에… ‘헌법 해석’ 둘러싼 갈등·난제 수북
헌법적 위기, 헌법정신으로 해결돼야… 민주적 리더십·개헌·선거제 개편 동시 모색 바람직 


비상계엄과 연쇄탄핵은 ‘블랙스완’이다. 나심 탈레브는 책 ‘블랙스완’에서 ①예측 불가 ②엄청난 영향력 ③발생 후에야 원인을 설명하려는 경향을 그 특징으로 규정했다. 그는 블랙스완을 ‘예측할 수 없는 극단적 사건’으로 정의했다.

반면 ‘커런시 워’를 쓴 제임스 리카즈는 ‘일상적 사건의 극단적 결과’로 규정했다. 비상계엄은 나심 탈레브의 견해에 부합하고, 연쇄탄핵은 제임스 리카즈의 블랙스완론이 더 적합해 보이지만 누구의 견해를 따르더라도 대한민국이 극단적 위기이자 헌법적 위기에 처한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위기의 본질

극단적 위기의 본질은 ‘헌법적 위기’다. 국회와 시민의 힘으로 초헌법적·물리적 헌정 중단은 가까스로 막았지만 ‘헌법 해석’을 둘러싼 갈등은 풀기 어려운 난제를 계속 던지고 있다. 영국 작가 존 해링턴은 “반역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공하면 아무도 감히 그것을 반역이라고 하지 못할 테니까”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1995년 전두환·노태우를 수사하던 검찰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와 맥이 통한다.

미국 필라델피아 ‘헌법센터’에서 들은 인상적인 설명.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실패한 내란’을 다루는 우리의 역량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량이다. 쟁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①비상계엄이 ‘통치행위’라는 윤석열 대통령 측 논리와 (절차와 사유에서) 헌법 77조를 명백히 범했다는 국회 측 논리 ②헌법 84조가 규정한 윤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 소추 ③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위와 한계 ④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정족수 ⑤헌법 111조 4항 국회의 ‘권한쟁의심판’ 청구로 국회가 인준한 헌법재판관 3인 임명 가능한지 여부 ⑥헌법 113조 재판관 6인 찬성으로 탄핵 인용한다는 것이 6인만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지 ⑦만약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헌법 84조 ‘소추되지 않는다’는 뜻이 재판 중지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수사와 기소만 의미하므로 재판은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인지 ⑧탄핵 이후 개헌을 한다면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헌법 공포권’이 있는지.

한국 민주주의가 큰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 민주주의는 자유·공화·법치주의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최장집 교수의 통찰대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체화에 실패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쿠데타와 혁명을 동시에 폐기 처분한 ‘1987 체제’ 이후로도 여전히 쿠데타와 혁명이라는 망상을 꿈꾸는 세력이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게 한국 민주주의의 슬픈 자화상이다.

◇헌법적 권위

정치는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영역이다.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사람은 정치에 맞지 않는다. 상대를 타도와 척결 대상으로 보는 ‘운동권정치’와 ‘검사정치’가 민주주의를 붕괴시키고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핵심적 덕목인 민주적 리더십이 결여돼 있다.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보는 이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최선’을 좇다가 늘 ‘최악’을 만든다. 민주주의는 ‘차선’과 ‘차악’ 중에서 고르는 지혜임에도.

민주화운동을 했던 이들과 법을 전공한 이들이 정치학교에서의 훈련 없이 명망가가 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이들이 민주주의 대신 민중을 동원한 체제 전복의 혁명 DNA를 여전히 못 버렸다는 점, 그리고 ‘법의 지배’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로 법치를 훼손한다는 점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인내와 양보가 필요한 시스템인데 이들은 자기 뜻대로 안 되는 상황을 조금도 견디지 못한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헌법 같은 제도가 아니라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라고 일갈했다. 또 다른 저서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서 이들은 탄핵과 거부권 같은 헌법적 권리 남용이 민주주의를 붕괴시킨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지금 위기는 헌법적 위기이므로 헌법의 권위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핵심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하루빨리 9인 체제를 완성해야 한다. ‘심리 정족수 7인 효력 정지’와 ‘의결정족수 논란’ 등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방법은 9인 체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헌법재판관 임명권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한덕수 권한대행이 양곡법 등 6개 법안 거부권을 행사했다.



◇해법의 모색

이미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헌법재판관 3인 임명과 관련해 민주당 몫 2인, 국민의힘 1인으로 민주당과 합의했고, 청문회와 국회 인준을 마친 상황에서 한덕수 권한대행은 이들을 임명하는 것이 옳았다. 한 권한대행에게 재판관 임명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는 권성동 원내대표와 다시 합의하라는 건 윤석열 대통령 측 지연작전에 동조한 것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거꾸로 민주당도 이 문제는 연쇄탄핵이 아닌,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옳았다. 민주당이 한덕수 권한대행 담화 후에 바로 탄핵하지 말고 여야 원내대표 회담과 ‘여야정협의체’를 통해 국민의힘이 헌법재판관 임명에 협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 탄핵했다면 명분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법원의 시간에 쫓기는 이재명 대표를 위해서인 듯 ‘탄핵 사유’와 ‘의결정족수’ 논란을 해소하지 않은 채 후다닥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의결정족수 논란은 결국 헌재가 판단할 수밖에 없다. 헌법의 위기를 위헌적 요소가 있는 연쇄탄핵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은 ①대통령제의 약점 ②5년 단임제의 한계 ③소선거구제에 의한 양당제 폐해 ④헌법 운용의 경직성 ⑤대통령의 캐릭터가 혼재돼 나타난다. 민주적 리더십을 갖춘 대통령이 야당과 헌법기관을 존중한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현행 헌법에서도 잘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 의존하지 않고 제도에 의존하는 방식을 택한다면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을 하는 것이 좋다.

방향은 이미 다양하게 제안되어 있다. 내년 상반기에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해 2028년에 대선·총선을 함께 치르자는 제안도 있다. 국회의원 중선거구제, 2026년 지방선거에서 단체장 결선 투표제 도입 같은 선거제도 개편안도 있다.

◇기회와 의지

중요한 것은 헌법의 위기를 헌법의 권위를 통해 해결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원문 →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4123101030930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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